◎●◎●
<역사의 파편들> 속 일본에 대한 공정한 평가 본문
CIA 출신으로 1989~1993년 제 15대 주한 미국대사였던 Donald P. Gregg(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차미례 옮김) 중에서.
그의 평가는 특히 두 나라 모두에 정통하면서도 객관적인 제 3자의 서구인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그는 오랜 CIA 요원으로서 1955년부터 두 차례 총 10년간 일본에 재직하면서 일본어를 깊이 공부하였고 그 문화도 수준 높게 이해하게 되었다. 한편 나중에는 한국에 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상대하고 노태우 정권에 와서는 주한 미국대사가 되었다. 그만큼 양국 모두에 대한 경험이 많고 문화적 이해가 높으면서도 어떤 나라와도 특정한 이해관계가 없는 보기 드문 제3자인 것이다. 또한 20대 초반부터 아시아 근무를 희망했던 만큼 사이판, 버마(미얀마), 베트남 등도 거쳤고, 아시아 자체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P. 87
(1950~60년대)
"우리는 어느 바람 부는 여름 밤에 그곳(후지산)을 올랐는데, 산비탈 위에서 바람에 날아다니는 깡통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어딜 가든지 공중에 가득 찬 오줌 냄새로 기억되는 등산이었다 ... 1958년 당시만 해도 등산로에는 이렇다 할 공중화장실이 한 군데도 없었다."
P. 101
"일본식 유머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뿐, 자기 자신을 겨냥하는 경우는 없다."
P. 149
"일본은 해결되지 않는 범죄사건들은 대개 한국인들 짓으로 덮어씌웠다. 그들은 하층계급의 직업을 갖고 있었고, 일본인들과 사교적인 접촉이 전혀 없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자기네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악랄한 적대감을 가지고 대했다."
"1923년의 대지진 재앙 이후 일본인들은 분노와 혼란의 와중에서 한국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들은 대규모의 자연재해와 그 후유증으로 급속히 번진 엄청난 화재에 대해 마치 한국인들이 어떤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6천명이나 되는 많은 한국인들을 살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인들은 수천명의 한국인들을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강제로 일본으로 끌고왔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노예 노동이자 강제 노역의 노동력 공급원이라 할 것이다."
P. 151
"우리가 그 아이(한국인)에게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라고 얘기하자마자, 그녀는 마치 그 아이는 어떤 도움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듯이 '하지만 걔는 한국인예요!'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P. 267
"천황제를 존속시킨다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전후 결정은 일본이 신속하게 사회를 재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1937년의 난징 대학살과 같이 일본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그들이 진지하게 반성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P. 332
"내가 도쿄에 근무할 때에도 극도로 위험한 일본인 테러단체가 도검으로 무장한 채 미국대사관에 난입한 적이 있었다. 그중 몇명은 감옥에 갔지만, 여전히 위험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인간들로 남아있다. 이 두개의 사건은(전대협 결사대와 일본인 테러단체) 두 나라의 완전히 다른 극명한 차이로, 한국인이 좀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1989년 전대협 결사대의 미국 대사관저 점거 사건을 두고 한 말. 2006년 그의 서울 방문시 당시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들 중 3명이 그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